겨울이 막 지나고 나는 한 언론사에서 나왔다. 신문사와 방송사를 모두 거치며 뉴스를 배웠기 때문에 이후에 어느 쪽으로도 갈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당장 나와서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은 없었지만 내 경력이 그리 나빠보이지는 않았다. 경력이 없을 때도 들어갔는데, 이제 경력도 쌓였으니 어디라도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구직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았다. 석 달 넘게 날마다 이력서를 두세 곳씩 제출하면서 방송 구성작가 일을 구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파이는 작은데 그 파이를 먹겠다고 몰려드는 사람은 수십 명씩 되는 셈이다. 몰리는 사람이 많아 방송사 측에서는 일정연한 이상은 경력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까지 했는데도 3~4분 내외의 코너에 10년차 전후의 작가들이 무더기로 지원서를 넣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채 3년이 안 되는 경력으로 실업급여가 다 떨어질 때까지 작가 자리만 바라보고 이력서를 넣고 있었으니 다 지난 지금 생각으로는 이란격석이었다. 가끔 면접을 보자고 부른 곳도 있었지만 면접에서 탈락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렇게 기약 없이 하루는 놀고 하루는 쉬는 생활을 반복하던 중 이력서를 등록해둔 파견회사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스포츠지에서 온라인 업무를 담당하는 자리가 났는데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직무 설명이 명쾌하지 않아 불안했지만 뭘 해도 노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었다. 면접은 4:4 그룹 면접으로 진행되었다. 면접 질문은 좋아하는 스포츠 분야나 포털에서 기사를 선택할 때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느냐는 평이한 것들이었다. 나뿐 아니라 다른 지원자들도 어디 적어놓은 것을 읽기라도 하는 듯 술술 대답했다. 

 

형식적인 질문이 끝나고 면접관 가운데 가장 높은 사람으로 보이는 한 명이 말했다. 어차피 채용될 사람도 이 일이 맞는지 맞지 않는지 판단할 시간이 필요하고 일을 시키는 입장에서도 여러분이 일을 잘하는지 아닌지 판단할 시간이 필요하니 첫 달은 최소금액만 받고, 그 이후에 다시 연장여부를 상의하자고 했다. 담당 업무는 실시간 검색어 대응이라고 했다. 담당 업무를 듣고도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실시간 검색어에 언론사가 왜 대응을 해야 할까. 

 

나도 이 회사가 뭐하는 곳인지 판단이 안 됐다. 한 달 후에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은 나도 나쁘다고만 생각할 것은 아니었다. 다만 파견업체 에이전트는 페이 조건을 나에게 이미 제시했었다. 그래서 최소금액이라는 게 당연히 거기서 깎겠다는 의미인 줄은 알았지만 최소금액이라는 표현에는 숫자가 포함되어있지 않아 구체적으로 얼마를 말하는 것인지 몰랐다. 2년을 넘게 언론 밥을 먹으며 그 열악한 환경에서도 페이는 조금씩 오르고 있었는데 에이전트가 처음 부른 페이도 내가 마지막으로 받던 페이에 비해 많이 깎여 있었다. 

 

면접 후 에이전트가 사용사업주와 짧은 면담을 하고 나왔다. 회사 측에서 말한 최소금액이란 최저시급이었다. 페이가 처음 일할 때 수준으로 폭삭 내려앉았다. 말 그대로 최저임금. 이 돈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 수는 있다. 하지만 목돈을 쓰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었고 저축도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입사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우선 나는 공백 기간이 마음에 걸렸다. 실업급여가 다 떨어지고도 두 달을 흘려보내 경력 단절에 대한 불안이 컸다. 내가 그간 쌓은 경험이 회사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는 반대로 나 역시 업무 파악을 빨리 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편하게 일하고 경력 단절을 막는 동시에 봉급을 받으면서 구직활동을 하면 될 것 같았다.

 

두 번째 이유는 직무가 온라인 언론 분야에 속해 있다는 것이었다. 신문사에서 일하던 어느 추운 날, 경찰이 민주노총에 진입한 소식을 다음날 신문 1면에 내려고 준비 중이었다. 유력 언론사에 있으면 정보 입수가 빠를 것 같지만 우습게도 나는 내부 정보망이 아니라 인터넷 기사를 통해 모든 소식을 접했다. 그 때 신문사는 시시각각 바뀌는 상황에 따라 1면 최상단에 넣을 제목만 내부적으로 수차례 바꿀 뿐, 독자들에게 어떤 소식도 전하지 못했다. 나는 인터넷 시대에 신문이 얼마나 구시대적 유물로 전락했는지를 그렇게 알았다. 방송은 기본적으로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사람들이 보고 소식을 이해할 정도로 구성해내는 시간을 고려하면 보도 분야 종사자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셈이었다. 그들은 느리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빠른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의 뉴스 이용 양상은 신문과 방송을 넘어 컴퓨터에서도 모바일로 옮겨가 이제 마음만 먹으면 터치 몇 번으로 뉴스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인터넷 기반 언론사를 경험하는 게 나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막상 입사 첫 날이 되고보니 출근한 사람은 나 포함 두 명이었다. 다른 두 명은 고사한 것 같았다. 이 회사의 면접관은 학력, 경력 다 필요 없고 연예나 스포츠에 미쳐 있는 사람을 원한다고 했다. 학력과 경력이 다 필요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입사 첫 날부터 알게 되었다. 이들은 학력과 경력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학력과 경력이 없는 사람이 필요했다. 내가 배운 것은 이런 게 아니라며 제 목소리를 내려는 사람, 타 언론사에서의 경험을 내세워 입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은 이들에게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다물고 시키는 대로 일할 사람이 필요했다.

 

첫 날 업무에 대한 몇 가지 교육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담당 팀장은 회사의 상황도 설명했다. 회사는 수익률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고 어떻게든 수익을 얻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했다. 회사가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스포츠 배팅 사업이나 모바일로 경기 상황을 중계하는 등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봤지만 전부 망했다고 했다. 기존에 연봉 4000~5000만원씩 받던 직원들이 있었지만 현재 이 회사에서 수익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어뷰징밖에 없는데 그 연봉을 주면서 어뷰징을 시키자니 단가가 안 맞고 그 사람들에게 단가에 맞는 일을 주자니 막상 시킬 일이 없어 전부 내보냈다고 했다. 또 이 일은 휴학한 대학생 정도나 할 일이지, 4년제 대학 제대로 나와서 할 일은 아니라고도 했다. 나는 이 말을 내가 연봉 4000만원 이상을 받게 되면 회사는 무슨 이유로든 나를 해고할 것이라고 해석했고, 내가 난파선에 몸을 실었다는 사실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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