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가지 못하는 이유로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다고들 한다. 나는 시간이 있고 돈이 없는 쪽이었다. 내 재정 사정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다만 일하면서 조금씩 저축했던 돈이 있었고 한국에 있으나 한국을 떠나 여행을 하나 이 돈이 사라질 것은 자명했다. 여기부터는 선택의 문제였다. 여행을 떠나면 한국에서 지내는 것보다 돈이 좀 더 빨리 소진되겠지만 이러나저러나 쓸 수밖에 없는 돈이라면 나는 여행하는 쪽을 선택했다.

 

혼자 유럽에 다녀오겠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다들 나를 부러워했다. 그게 부러움을 살 일이었을까? 여행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신이 있을 곳에 있겠다는 선택을 한 것이다. 일을 계속하겠다는 선택, 가족이나 고양이와 하루를 더 지내겠다는 선택, 낯선 곳에서 외로이 지내지 않겠다는 선택. 각자의 선택은 모두 그 이유가 있고 가치가 있다. 나는 그 가운데 한국을 떠나 혼자 다니겠다는 선택을 한 것이다. 부러워할 것도 없고 대단할 것도 없다. 시작 전의 여행은, 흰 도화지 같았다. 나는 그 위에 아이슬란드의 오로라와 노르웨이의 송네피오르를 그리고 싶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막연히 아이슬란드에 가고 싶었고 북유럽이 좋았다. 하늘의 커튼 오로라를 꼭 보고 싶었고, 한여름에 녹아내리는 것 같을 때 같은 북반구임에도 10도를 넘지 않는 서늘한 날씨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유럽에 혼자 가겠다는 선택은 자유롭게 했다. 그 덕분에 나는 여행 도중 마음이 맞지 않아 싸울 일이 없었고 내가 원하는 곳에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 수 있었다. 그러나 자유에는 책임이 따랐다. 혼자 여행한다는 것은 나에게 생기는 모든 일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다. 내가 멈추면 여행도 멈추고, 내가 길을 헤매면 내 여행도 방황한다. 여행지의 말과 글은 생경했고 그 기간동안 돈이 떨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혼자 여행 루트를 짜면서 교통편을 예약할 때까지도 나는 책임 없는 자유를 꿈꾸며 신나기만 했다. 
 
 
내 여행은 35일이었다. 그 전에도 혼자 유럽을 다녀온 적이 있었지만 그 때는 한 주 정도에 불과했던 데다가 여행사에서 교통편은 물론 숙소까지 다 잡아주는 상품을 통했다. 나는 아이슬란드에 가고 싶었는데 아이슬란드에 가는 상품은 있었지만 기간이 짧고 가격이 비쌌다. 일반적인 휴가 일정에 맞게 설계된 상품이었지만 내 일정이 일반적이지 않았다. 유럽의 경우 여행 기간이 한 달 가량 되는 상품이 있지만, 대개 서유럽 등 관광지로 유명한 곳만 묶여 있었다. 그것도 좋은 경험이었겠지만 나는 아이슬란드에 가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곳에 가서 원하는 만큼 있으려면 여행을 직접 설계해야 했다.
 
 
이 여행은 상당히 충동적으로, 저렴한 교통비를 따라 설계했다. 숙소는 초반 며칠만 한국에서 미리 잡고 그 이후로는 현지에서 그때그때 예약하기로 했다. 교통 루트도 출국 직전에야 완성했고 유레일패스는 구입하지 않았다. 아이슬란드에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여행이었기 때문에 전체 일정 가운데 아이슬란드에 가장 오래 있었다. 다만 아이슬란드까지는 한국에서 직항 편은 물론 경유 노선도 없어 여러 나라를 거쳐 아이슬란드로 이동했다. 내 경우 헬싱키로 들어가 배로 스톡홀름까지 간 다음 다시 기차로 오슬로로 이동했다. 오슬로에서 비행기로 아이슬란드의 케플라비크 공항에 갔다. 한국에서 아이슬란드로 들어가기까지 4일이 걸렸지만 여정은 즐거웠다. 그리고 아이슬란드에 2주간 머물렀다. 아이슬란드가 익숙해질 즈음, 새로 여행을 시작하는 기분으로 다시 오슬로로 나왔다.
 
 
오슬로에서 탈린까지 비행기로 이동하고, 탈린에서 하루를 머문 다음 배로 헬싱키에 들어왔다. 헬싱키에서 오슬로를 경유해 베르겐까지 갔다가 노르웨이인어넛셀로 다시 오슬로로 돌아왔다. 오슬로에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으로, 스키폴 공항에서 곧바로 로마로 들어갔다. 로마에 5일간 머물다가 파리로 들어가 18시간을 보낸 후 다시 헬싱키로 향했다. 그리고 헬싱키에서 이틀을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여정을 잡았다.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관광지로 선호하는 곳이지만, 나는 그런 이유와 무관하게 이들 도시로 가는 교통편이 저렴했기 때문에 갔다. 올해가 쇼팽 콩쿨이 열리는 해라 폴란드에 가보고 싶기도 했지만 당시 바르샤바행 비행기는 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로마를 선택했다.
 
 
계획을 세울 때는 미처 몰랐는데 되돌아보면 꽤나 소모적으로 세운 여정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헬싱키와 오슬로를 참 여러번 지나다녔다. 헬싱키와 오슬로는 모두 좋은 도시지만, 특히 오슬로의 경우 엄청난 고물가를 자랑하는 곳이라 실제 생활에 부딪히면서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어린 시절, 지구본을 돌려가며 세계 각지의 나라와 도시들을 상상할 때, 이름이 예쁘다며 한번쯤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과 실제 그 도시에서 지내는 것은 달랐다. 노르웨이의 물가는 살인적인 수준을 넘어, 존재하려면 돈을 써야 했다.
 
 
여행지에서 일어나는 일 가운데, 단 한 가지도 남이 대신 해주기를 바랄 수 없는 상황에 나를 데려다 놓는 게 쉽지는 않았다. 이 이야기는 여행을 시작하기 전의 내가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 치명적인 시행착오, 그 외 비교적 특수한 경험에 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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