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겐에서 출발해 노르웨이인어넛셀로 오슬로에 도착한 것은 이미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각이었다. 뮈르달에서 오슬로로 향하는 기차에서 정전이 발생해 철로 중간에 멈춰선 기차가 예상했던 시각보다 두 시간은 늦게 도착했던 탓이다. 기차 내의 조명은 모두 꺼졌고 설상가상으로 화장실에도 갈 수 없었다. 기차 내 화장실에 사람이 있는지 여부를 알려주는 장치와 화장실 개폐 시설이 모두 전기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기차에서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승무원에게 물어보라는 방송을 했지만 그들도 이 기차가 언제쯤 도착할지에 대해서는 확답을 주지 못했다. 나에게는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그 날 묵기로 했던 호스텔에서 내가 자정이 다 되도록 도착하지 않으니 어떻게 된 일인가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기차가 연착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호스텔 측에서 언제쯤 도착할 것 같냐고 묻기에 한 시간쯤 더 걸릴 것 같다고 했지만 실제로 도착한 시간은 약 두 시간 후였다.
 
예상 외의 일은 그게 끝일 줄 알았다. 이동 시간이 14시간에서 17시간으로 늘어났지만 그 날의 목적지였던 호스텔에 무사히 도착했다. 이제 몇 시간 자고 공항에 가면 된다. 그러면 비행기가 나를 암스테르담으로 데려다줄 터였다. 노르웨이전 어플리케이션에서 체크인이 되지 않았지만 단순한 어플리케이션 오류나 인터넷 접속 에러 정도로 생각했다.
 
다음날, 공항으로 향했다. 내 휴대폰에서는 여전히 체크인이 되지 않았다. 공항의 체크인 기계에서도 체크인이 되지 않았다. 수하물을 부치는 곳에 갔더니 카운터에 가서 이야기하란다. 노르웨이전 카운터에서 번호표를 뽑았더니 대기자수가 이미 30명 가까이 된다. 사실 나는 그 전까지 공항 카운터에 갈 일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이 정도 대기자수가 보통인 줄 알았다.
 
내 차례가 되어 직원에게 체크인이 안 된다고 했더니 오늘 암스테르담행 비행기는 취소되었다고 한다. 나는 원래 암스테르담에 이틀을 머물고 로마로 가려고 했고 암스테르담에서 로마로 가는 비행기는 이미 체크인까지 마친 상태였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이미 교통편은 모두 예약하고 출발했기 때문에 늦어도 내일까지 암스테르담에 못 가면 이후의 일정은 모두 틀어진다. 그래서 암스테르담에 갈 다른 비행편이 없냐고 했더니, 내일 스톡홀름 알란다 공항을 경유해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비행편이 있단다. 네덜란드 일정이 하루로 줄었고 미리 예약한 네덜란드 숙소 비용도 날아갈 것이고 노르웨이의 고물가를 하루 더 견뎌야 했지만 이 정도면 일정이 약간 변동되는 수준이라 괜찮을 줄 알았다. 노르웨이전의 카운터 직원은 비행기가 취소된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다. 나도 비행기가 취소된다는 것은 좀처럼 겪지 못한 일이라 기체결함 등 중대 사유가 있으리라고 추측만 했다.
 
오슬로 도심에서 공항까지 오는 비용은 편도가 180크로네였다. 어차피 오늘은 네덜란드에 갈 수 없으니 오슬로에 새로 머물 숙소를 정하고 도심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어제 있던 곳과 다른 호스텔의 도미토리룸을 예약했다. 그곳에서 같이 숙소를 썼던 룸메이트에게 뜻밖의 정보를 들었다. 룸메이트는 노르웨이전을 통해 베르겐으로 가는 티켓을 예약했지만 노르웨이전의 파일럿 노조가 파업을 하는 바람에 노르웨이전이 운항을 하지 않아 오슬로에 발이 묶였다고 했다. 내 몸은 오슬로에 있었으나 내 모바일 기기에 저장된 페이지들은 온통 한국 사이트였다. 나는 당시 한국에서 국무총리가 드디어 교체되었다는 뉴스는 알고 있었지만 정작 나를 네덜란드까지 데려다줄 파일럿이 파업했다는 소식은 모르고 있었다.
 
오슬로에서 하루를 더 보내고 다시 가더모엔 공항에 갔다. 스톡홀름을 경유하는 노선도 어플리케이션에서 체크인이 되지 않았다. 카운터를 다시 찾았더니 이번에는 대기자가 50명이 넘는다. 현지 방송사에서 공항에 나와 이 일을 취재하기도 했다. 번호표를 뽑고 한 시간여를 기다려 카운터 직원과 대화할 기회를 얻었다. 스톡홀름 경유 노선도 취소되었단다. 대신 암스테르담 직항 편이 살아났다기에 직항 편으로 티켓을 다시 교환했다.
 
노르웨이전 파일럿은 스페인, 아시아 등 비북유럽 출신의 파일럿이 노르웨이를 비롯한 북유럽 출신 파일럿과 같은 대우를 받을 것, 그리고 모회사(NAS) 직원과 자회사 직원간의 동등한 처우를 요구하며 파업했다. 한국에서 모회사와 자회사 간의 첨예한 서열화에 적응해 차별을 누리고 또 당하던 나에게는 신선한 이슈였다. 한국에서 모회사 소속인지 자회사 소속인지에 따른 임금 차별이나 고용 조건 차이는 공공연한 사실이었고 이에 대한 부당함을 피력하는 것은 모난 돌임을 자처할 뿐이다.
 
한국 언론사에서 일하며 나는 제법 긴 파업도 겪었다. 파업하는 쪽의 사유는 자신들의 임금 인상이나 처우 개선, 편파보도 등이다. 동료나 타인의 부당 대우를 바로잡으려는 파업은 겪지 못했다. 한국 언론사 가운데 파업이 가능한 조직이 몇 없다. 그 몇 없는 언론사의 기자들이 파업을 한다고 해도, 언론인으로서 자리를 지키며 대중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것 역시 중요하기에 자리에 남겠다는 논리를 내세우기도 한다. 나는 당시 이 이야기가 꽤 그럴듯하게 들렸지만 현재 한국 언론은 한두 업체가 사라진다고 해도 대체할 다른 언론사들이 충분히 있다. 파업하지 않는 이유로 알 권리를 운운하는 것은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모바일 화면 터치 몇 번으로 기사를 접할 수 있는 세상에서 언론사 한 곳이 파업을 한들 사람들은 다른 채널을 통해 소식을 얻으면 그만이다. 물론 파업으로 기사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언론사의 점유율은 떨어질 것이다. 이처럼 기자의 파업으로 독자의 알 권리는 타격을 입지 않고 매체에만 타격을 입힐 방법이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은 파업할 때 모두 행동을 같이 하지는 않는다. 언론사도 이들 앞에서 말랑말랑하게 대처하지 않는다. MBC는 파업한 인력의 공백을 메우려고 시용 기자를 선발하기도 했다.
 
보도자료로 기사의 대부분을 만들어내는 체계에서 지면이나 방송 상으로 파업한 기자들의 공백을 느끼기는 어렵다. 파업하지 않은 기자들에게 과다한 업무가 주어져 기사의 질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이는 정작 기사의 주 타깃인 일반인은 잘 모르고 속칭 선수들끼리나 아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다소 밀릴 뿐이다. 파업의 목적은 업무 공백을 만드는 비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해 사용자에게 노동자의 주장을 펼치는 것이지만 한국 언론사의 사용자는 파업으로 인한 타격을 입기는커녕 인건비를 절약한다. 타격을 입지 않은 사용자와 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 가운데 누가 먼저 포기하게 될까?
 
물론 기자와 파일럿의 차이는 있다. 한 명의 기자는 무리하면 기자 두 명, 세 명이 하던 일을 혼자 해낼 수 있지만 파일럿은 아무리 일을 하고 싶어도 한 명이 탈린행 비행기와 암스테르담행 비행기를 동시에 운항할 수 없다. 어쨌거나 노르웨이전은 나에게 탑승권을 발급했다. 체크인을 하도록 했다는 것은 어떻게든 비행기를 띄우겠다는 의미. 노르웨이전의 파일럿 가운데 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사람이 있어 급하게 투입되었으리라고 생각했다. 보안검색까지 마쳤건만 항공사는 계속 출발 시각을 미뤘다. 출국장에서 보니 출발 시각이 다 되도록 비행기가 오지도 않았다. 불만이 머리 끝까지 쌓였지만 노르웨이전의 탈린행 비행기는 12시간이나 출발이 지연되고 있어 고작 5시간 지연된 나는 입이 다물어졌다.
 
수차례의 지연 끝에 나타난 비행기는 노르웨이전의 비행기가 아니라 다른 항공사의 비행기였다. 비행기 내부에 들어서니 의자에 붙이는 부직포만 급하게 노르웨이전으로 바꿔 붙인 티가 났다. 끝내 노르웨이전의 파일럿은 나타나지 않았고, 노르웨이전의 경영진은 별 수 없이 다른 회사로 하여금 이 비행을 대신해달라고 한 것이다. 노르웨이전 경영진이 국내노선은 버스를 대절하겠다고도 했지만 베르겐에서 오슬로까지는 기차로 6시간이 걸린다. 항공사가 버스를 대절해 목적지까지 가게 해준다고 해도 승객 입장에서 수락하기에 다소의 용기가 필요한 거리다.
 
나는 한 주 후 노르웨이전을 한 번 더 타야했기 때문에 그 때도 이런 사태가 오지 않을까 불안했다. 다행히 그 전에 파업이 끝났다. 회사는 이들의 업무 공백을 메워낼 방법이 없었고 결국 이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했다. 한국 언론사에서 긴 파업으로도 원하는 바를 이루기는커녕 기자들만 가계에 타격을 입는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총 방문객: 148 / 오늘 방문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