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네덜란드에 대해 물었을 때 하나같이 자유로운 곳이라고 입을 모았지만 네덜란드에서 내게 주어진 자유는 노숙의 자유였다. 노르웨이전 파업의 여운은 그렇게 진했다. 한국에서 떠나기 전부터 교통편을 촘촘하게 짜고 여행을 시작한 탓에 내 여행에서의 돌발 상황 허용치는 낮았다. 당초 예정대로라면 나는 전날 오후 9시부터 네덜란드에 있어야 했다. 노르웨이전 파일럿 파업 탓에 나는 자정이 넘어 네덜란드에 도착했고 12시간 후면 다시 비행기를 타고 로마로 가야했다. 오슬로에서 이미 암스테르담의 숙소를 잡았고 네덜란드는 24시간 교통편이 운행되었지만 내가 그 시간에 초행길을 헤매 어딘가를 찾아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암스테르담에 들어가기를 포기하고 공항에서 날이 밝기를 기다린 다음, 로마 숙소에서 자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밤샘에 약하다. 늦게 잘 수는 있지만 하루에 한 번은 어떻게든 자야 한다. 입국장에 있었으면 모르겠지만 내가 수하물을 찾고 밖으로 나와버린 게 실수였다. 그런 곳에 눈 붙일 곳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런 곳이 있으면 공항은 노숙자 천지가 될 테니 말이다. 그렇다. 내가 하려던 것은 노숙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바로 그것이었다. 스키폴 공항은 청사 한쪽 끝에서 다른쪽 끝이 보이지 않을만큼 넓었다. 자정을 넘긴 시각이라 문을 연 가게도 거의 없었다. 그렇게 헤매다 딱 두 사람이 앉도록 만든 벤치를 찾았다. 눕기에는 짧은데다 가운데에 얕은 손잡이까지 있었기에 잠을 청하기에는 적절치 않았다.

 

그래서 눕지는 못하고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시내에 들어가기를 진작에 포기하고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암스테르담 정보를 찾기도 했다. 그렇게 새벽 세시가 넘어가니 정말 자고 싶었다. 자고 싶고 자야하는데 도무지 잘 수 없는 상황. 이제 시간도 더 늦어져 암스테르담의 숙소를 찾아가기는 요원해졌다고 생각했을 때, 공항 부근의 숙소를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쉐라톤 워커힐, 하얏트 등 고가의 호텔은 공항과 바로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당일 정오 전에 체크아웃하는 것으로 예약을 잡아야했는데 자정을 넘긴지 오래라 인터넷 상의 날짜가 지나가버려 당장 투숙하는 데 대한 예약은 되지 않았다. 호텔의 위치를 알았으니 직접 찾아가서 체크인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면 몇 시간 숙박비로 얼마가 청구될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도저히 잘 수가 없는데 어쩌랴. 늦었다고도 이르다고도 하기 애매한 시각임에도 공항을 오가는 사람은 계속 있었다. 사람들의 말소리와 발소리, 트렁크 구르는 소리, 청소 차량이 지나가는 소리가 이지러지는 곳에서 경계를 풀고 잠들기는 쉽지 않았다. 경계에 날을 세우고 있던 나는 지친 나머지 비싼 금액을 지불하는 한이 있어도 가까운 호텔에 가보려고 일어섰다.

 

몇 걸음 떼기도 전에 내가 잠들기를 포기했던 같은 모양의 벤치에 웬 여자가 몸을 접고 가방을 베개 삼아 자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옆 벤치에는 담요를 바닥에 깔고 벤치를 벽 삼아 자는 남자 두 명이 있었다. 이 모습을 보고 공항 노숙의 요령을 알았고 호텔을 찾으려던 내 생각이 편협했음을 깨달았다. 이에 용기 아닌 용기를 얻고 앉아서 버티던 자리로 돌아왔다. 벤치마킹한대로 가방은 베고 자더라도 트렁크를 자는 내내 꼭 잡고 있지는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가방 끈을 트렁크에 엇걸었다. 막상 가방을 베고 자려니 카메라, 노트 등으로 채워진 가방은 딱딱했다. 숙면과는 거리가 먼 환경이었지만 누워 있기라도 해야 다음날 컨디션이 어느 정도 유지되기 때문에 잠들지 못해도 눈이라도 감고 있으려고 노력했다. 공항 한복판에서 잠의 보상을 얻기 위해서는 소음에 굴하지 않는 신경과 남의 시선을 무시하는 담대함, 그리고 딱딱한 벤치 위에 내 몸이 얼마나 구겨져 있는지 잊을만큼 높은 피로도가 필요했다. 열악한 잠을 이루기 전 마지막으로 본 시각이 4시. 그리고 무엇엔가 깨어난 다음 시간을 보니 5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한 시간이라도 잠의 세계에 다녀온 덕분에 컨디션이 조금 나아졌다.

 

다시 잠들 자신은 없어 공항을 배회했다. 시내로 나가는 출구 가까운 곳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마사지 의자가 있었다. 2유로를 넣으면 10분 정도 작동된다고 한다. 여기서 조금 잘 수 있을까해서 돈은 넣지 않고 의자에 그냥 앉았다. 기대 앉을 수 있는 편안한 의자로, 등받이 없고 손잡이만 있는 벤치에 비해 훨씬 편했다. 한 1분을 그렇게 앉아있었을까. 사이렌이 크게 울려댄다. 하긴 사람들이 이 편한 곳 대신 불편한 벤치에서 잠을 청하는 것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의자에서 일어났더니 사이렌은 거짓말같이 사라졌다.

 

새벽 6시를 조금 넘긴 시각, 항공사 직원은 이륙까지 6시간도 더 남은 내 수하물을 받아줬다. 이제 남은 짐은 가방 하나. 암스테르담에 잠깐이라도 갔다 올지 여부를 짧은 시간 심각하게 고민했다. 아직은 주변이 어두웠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고 공항 청사에서 밝은 바깥을 보면 암스테르담을 못 본 게 억울할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잠의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비행기 출발 전까지 시간은 있었지만 당시 내게는 암스테르담을 보는 것보다 잠깐의 잠이 더 소중했다. 출국장에 들어가 보안 검색을 마쳤다.  다행히 출국장에는 비교적 편하게 누울만한 곳이 있었다. 여기서 네 시간쯤 자고 나니 훨씬 기운이 났다.

 

여행이 끝난 지금, 암스테르담에 가보고 싶기는 하지만 당시 못 간 것이 후회되지는 않는다. 쪽잠이 아니었으면 로마 길바닥에서 쓰러져 잤을 것 같다. 로마는 고급 호텔이 아니면 간판을 걸지 않았기에 숙소를 찾느라 같은 곳을 몇 번이나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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