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같은 시간에 같은 사건을 겪는다. 물론 그들의 입장은 한 쪽은 가해자로, 다른 한 쪽은 피해자로 판이하게 다르다. 이는 이후 이 일이 마음에 어떻게 남는지에 차이를 보인다. 한 쪽은 공히 강제력을 사용해 다른 사람을 제압했고, 다른 한 쪽은 타인의 강제력에 스스로를 지켜내지 못한 기억을 갖는다. 나에게는 후자의 기억이 있다.
 
성폭력 피해 기억은 절망감에 배신감, 두려움과 혼란을 한꺼번에 선물했다. 무력해지고 자존감이 떨어지며 지금까지의 세계관이 와르르 무너진다. 이는 사람에게 당하는 피해고 실수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다치게, 혹은 억압할 고의로 벌어지는 일이다. 이제 시간이 제법 지났음에도 그 언론사나 피의자, 기타 관련자의 이름을 어쩌다 접하는 것만으로 괴롭다. 그 일은 그만큼 치명적이었다.
 
앞서 밝힌 사건 이후에 일어난 다른 사건이 있었다. 1박2일간의 회사 워크숍 기간 동안 일어났고 한 명의 가해자와 한 명의 피해자가 있다. 피해자는 나였고 가해자는 당시 워크숍에 참석했던 직원 중 한 명으로 언론사 간부였다. 이 역시 술을 많이 마신 후에 일어난 사건이다. 첫 사건보다 수위가 훨씬 높고, 워크숍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 직간접적으로 개입된 사람이 많았다.
 
이 사건에 대한 자세한 서술은 피하려 한다. 잊은 것은 아니다. 앞서 있었던 일을 겪고는 몇 주 사이에 안정을 찾은데 반해 이 일은 수년간 24시간 내내 머릿속에서 강제로 리플레이되었다. 깨어있는 동안 이 일이 떠오르는 게 괴로워 잊어보려고 잠들면 같은 장면이 꿈에서 나왔다. 잊고 싶은 일을 다 잊을 수 있다면 편하겠지만 기억은 그 반대였다. 괴로운 기억일수록 이후의 심리적 방어를 위해 더더욱 깊이 박힌다. 지금도 얼마든지 리플레이가 가능하고 조사기록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 이야기를 접어두려는 이유는 시간이 다소 지난 지금도 공개의 부담이 내게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언급하면서 이 일을 토해내는 모든 과정이 힘에 부쳤고 지금은 구체적인 피해 사실을 아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제껏 이 내용은 수사과정 등 불가피한 상황에서만 오프더레코드 조건으로 밝혔다.
 
이 부분을 차마 공개하지 못한 것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였지만 이 결정은 내게 칼이 되어 돌아왔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하여튼 나는 이 사건 탓에 이후 몇 년간을 암흑 속에서 보냈다. 그 동안은 이것 외의 다른 생각을 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리고 이로 인한 나비효과로 내가 언론사 생활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사건 자체보다 사후 처리에서 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워크숍에서 두 번째 사건이 벌어진 직후에 바로 문제를 제기하는 대신 차후에 가해자를 대면해 개인적으로 문제 제기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후로 이 두 번째 가해자를 가칭 X라 하겠다. X는 늘 차분했다. 그리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쉽게 읽히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고 이 일에 나름의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나는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아 워크숍 당시 많은 사람이 있던 곳에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치명적이라고 부를만한 충격을 받고도 다소 소극적인 결정을 했던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나는 사과를 받는 선에서 일을 끝내고 싶었다. 나는 앞선 일처럼 개인적으로 사과만 받으면 된다는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전에 사과를 요구해서 사과를 받고 나 역시 나아진 적이 있으니, 그로서 충분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뭔가 미묘하게 분위기가 이상했다. 사건 이전까지 내가 그럭저럭 회사 생활을 하던 것과 달리, 그 이후부터 나는 매초 단위를 버티듯 살았는데 그에 반해 X의 행동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치게 자연스러웠다고 할까. X의 세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같았다. 물론 말과 행동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담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나로서는 괴로웠던 이 시기에 대해, 눈치 챈 사람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T와 X는 대처에서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X는 회피로 일관했다.
 
다른 이유는 입사하고 얼마 안 되어서 들은 이 조직의 성범죄 사건 처리 방식이었다. 그 중 피해자 입장에서 좋게 처리되었다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나는 이 회사가 성범죄 가해자를 해고 또는 파면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회사를 떠난 사람이 유사한 일로 외부에서 문제가 되었을 때, 그 사람 그럴 줄 알았다는 이야기가 전적과 함께 한 차례 돌 뿐이다. 이는 피해자가 회사에 남기 위해서는 끝까지 가해자와 동료로서 지낼 각오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끝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런 문제로 사내에서 서면 경고를 받은 가해자, 정직 처분을 받은 가해자, 징계 기록 없이 소문만 무성한 가해자 등의 소문은 수시로 들었지만 그들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사람들은 조직에 남아있지 않았다. 사법 처리는 시도한 사례조차 드물었다. 조직의 시선, 언제라도 상대와 마주칠 수 있다는 불안감, 이런 것들을 견디지 못하는 쪽은 조직에서 떠날 수밖에 없는데 이는 대개 피해자였다.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는 정신적인 타격을 크게 입지만 사건 해결 과정이나 그 후에 이야기가 퍼질 때 피해자의 괴로움은 대개 숨겨졌다. 이런 예에서 회사는 모든 고민을 터놓고 말해도 될 만큼 신뢰할만한 공동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 이야기를 알리는 것은 나는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면서 이야깃거리만 내주는 결과가 될 수 있었고 한 번 퍼진 정보는 회수가 불가능하다.
 
나는 가해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 X의 진솔한 사과를 받는 것이 목적이었다. 나는 X가 조직 내에서 몇 안 되는 정치적이지 않은 기자이며 괜찮은 기자라고 여겼다. 이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다만 나는 이 때 괜찮은 기자가 괜찮은 사람의 부분집합이라고 착각했다. 이 두 집합은 별개의 집합이다. 어쩌면 교집합이 있을 수도 있다. 어떤 기자의 기사에 기술적, 법적, 도덕적 오류가 없거나 적다는 것은 그 기자를 좋은 기자로 보는 기준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과 그 기자가 좋은 사람이냐는 따로 판단해야 한다.
 
나는 X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여주기를 원했을 뿐이다. X가 어떤 처분을 받아 직장을 잃거나 하는 모습을 본다고 한들 기쁠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이 일을 개인 간의 문제로 이해했고 따라서 해결 역시 두 사람이 하면 된다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래서 사건이 지나고 2주 후 X와 이야기할 기회를 얻어 나는 사건 당시의 일에 관해 대화를 시도했다. X는 그 전후의 내용은 기억하면서도 나와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 부분만 필름이 끊겼다는 뜻이다. 일명 블랙아웃. 술을 먹고 필름이 끊어졌다는 이야기인데 나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사건에 대해 물적 증거도 있었고, 당시 상황에 대해서도 무엇 하나 빼놓지 않고 기억했기에 꿈에서까지 시달렸다. X의 주장 진위여부와 무관하게 어쨌든 기억을 못한다고 하니 나는 그 당시 있었던 일을 X에게 대강 설명했다.
 
X와의 대화를 통해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알고 싶기도 했다. 나로 말미암아 일어난 일이 아니었기에 이 일을 벌인 사람에게 그 내용을 물을 수밖에 없었다. 운이 없었다며 내가 그 일을 지나 보내기는 어려웠다. 기실 피해자인 내가 그럴 필요도 없었다. 또한 사건 경위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게 내 마음을 달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일 자체를 기억하지 못했던 X는 당연히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했다. 단순히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 예상 밖의 행동을 보였다. 그 일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없었던 것이다. 사건을 저지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정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미묘한 대답으로 계속 질문의 핵심에 대답하지 않고 회피했다. 나는 직접적인 질문을 하느라 고심했지만 어떤 질문을 해도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나중에는 대체 어디까지 도망갈 거냐고 물었는데 이 질문에 X는 회피는 고사하고 대답하지도 못했다.
 
이 상황은 나로서는 미칠 노릇이었다. 나에게만 괴로운 기억이 있고, 상대는 기억에조차 없는 일이라고 한다. 나는 겪어서 마음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일이, 상대에게는 열쇠 없는 판도라의 상자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회피가 X의 고유한 대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기를 철저히 거부하면서 나온 자연스러운 행동이라는 것을 아는 데까지 두 달 정도 걸렸다. 블랙아웃 역시 믿을 수 없었지만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눠보고는, 만약 블랙아웃이 거짓말이라면 X는 기자가 아니라 배우를 했어야 했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두 달간 몇 차례 대화를 시도하면서 가해자로서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에, 화가 나는 한편 안쓰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이 과정에서 X가 사건에 대해서 어떤 언급을 하는 것조차 힘들어하고 조금만 건드리면 부서질 것처럼 보여 연민을 느꼈다. 그래서 문제 제기를 포기하고 그 문제를 접기로 마음먹고 이를 X에게 알렸다. 나만 불편한 감정을 참으면 될 줄 알았다. X와 답 없는 대화를 더 할 자신도 없었고 스스로 납득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이 일로 내가 그렇게 고통 받지 않을 줄 알았다.
 
어쨌든 그 일은 일어났고 X가 어떤 처분을 받는다고 해도 나는 그 일을 겪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내가 사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처벌을 포기하는 것. 이게 가해자 위주의 사고방식이며, 피해자에게 얼마나 가혹한 생각인지를 알게 된 것은 좀 더 나중이었다. 아무리 상상의 자유를 부르짖더라도 하지 말아야할 위험한 발상이다. 나는 다른 곳의 부정비리를 세상에 알리는 조직에서 일하며 나를 향한 명백한 폭력에 눈을 감으려 했다.
 
문제를 덮으면 모든 게 괜찮아지리라는 내 예상과 달리 나는 시간이 지나도 악몽과 공포에 시달렸다. 혼란스러웠다. 나는 정신적으로 지칠 대로 지쳐 더 이상의 시도는 하지 않으면서 몇 달을 정서적인 암흑 속에서 기계처럼 일했다.
 
사건을 묻겠다고 나름의 이유를 갖고 결정했지만 그렇다고 내 그릇에 넘치는 괴로움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묻어두기로 하더라도 어떻게든 감정 처리는 해야 했다. 성범죄 피해자의 경우 마냥 침묵을 지키는 것보다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는 것이 심리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들에게는 심리적인 지지가 무엇보다도 절실하지만 피해자가 제대로 된 위로를 얻기는 어렵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내가 힘들다고 말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무한정 털어놓을 사람은 없어서 혼자 풀어내려고 많이 애를 썼다.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으면서 얻는 심리 치유 효과는 한정된다. 심정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놓는 게 피해자에게 유리하기만 하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성폭력 이야기가 수면 위로 드러나 있을 것이다. 이미 정신적으로 지친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 사실을 누군가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담을 느끼기 때문에 가급적 공개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또한 잘못된 사회 통념 탓에 성폭력 피해 사실이 온전히 가해자의 잘못에 인한 피해로 인정되지 않기도 한다. 이 일을 털어놓는 피해자는 이 이야기를 아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 모습을 보고서 마치 파놉티콘에 갇힌 느낌을 받는다. 이야기를 나눌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안다면 그 부담은 더욱 커진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 가해자를 모르고 나만 아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렸을 때의 반응이 내 경험으로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내 이야기를 들은 제3자의 태도는 둘로 나눌 수 있었다.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람과 피해자를 비난하지는 않는 사람이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가해자를 비난하는 것은 고사하고 피해자를 비난하지 않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상대적으로 안심하게 되는, 이상한 상황에 놓인다. 그 둘 가운데서도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람의 비율이 더 높은 편이다. 피해자인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피해의 잘못을 나에게 돌렸다. 이야기에서 가해자는 마치 절벽이나 위험한 장소처럼 그 입장이 어디론가 증발하고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거나, 왜 반항하지 않았냐는 등의 피해자를 향한 비난을 수차례 들었다. 이들은 가해자 X를 모르고 나만 아는 사람들이었음에도 내 이야기에 나를 비난했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 대응하지 못했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이들의 말에 기분이 상했지만 반박할 논리도 떠오르지 않았고, 기력도 없어 이들의 말을 마음에 담아둘 수밖에 없었다. 이들에게 다시는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고 인간적인 신뢰에 대해서도 재고했다. 어쩌면 이들의 탓이 아니라 내가 아무런 힘이 없었던 탓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당시의 나는 피해에 대한 괴로움, 피해 사실이 알려지는 데 대한 두려움, 가해자를 언제 다시 볼지 모른다는 공포, 사건이 계속 머리에서 반복되는 일 등이 모두 혼재되어 긍정적인 감정의 존재조차 잊고 있었다. 살아있는 모든 순간을 감당하는 데 용기가 필요했다. 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결국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는 범위가 가해자와 피해자를 모두 아는 사람으로 확장되었다. 공개 자체가 부담이었는데도 괴로움은 내가 스스로 파놉티콘에 들어가게 만들었다.
 
나는 믿을만한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믿을만하다고 생각했던 동료 E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E와 이야기할 때는 내가 일방적인 비난을 받지 않았다. E는 X가 나쁜 사람은 아니라며 너를 좋아했던 것 같고, 이 일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 좋을 것이 없으니 어렵겠지만 잊어버리라고 했다. E는 X가 나에게 사과했어야하지만 어쨌든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잘 지내는 것이라고도 했다. 가해자에게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갑갑했지만 한편 내가 잘 지내야한다는 말이 무겁게 와닿아 이 말을 지표로 반 년 정도를 견뎠다.
 
이후로 나는 조직 차원의 성범죄 처리 규정을 알아봤다. 내가 있던 직장은 직장 내 성적 괴롭힘에 대한 규정은 없었지만 품위 유지에 대한 규정이 있었다. 그러니까 피해를 받은 사람 때문에 가해자 X가 징계위에 회부되는 게 아니라 회사의 품위를 손상시킨 잘못을 묻는 것으로 회사에 끼친 손해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것이다. 이는 조직 외부의 사람이 피해자일 경우에도 사내 규정으로 직원인 가해자의 징계가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으나, 피해자가 조직 내에 있다면 그 피해자는 이로 인한 구제를 회사 차원에서는 받을 수 없다. 가해자 징계 규정은 있지만 피해자 구제에 관한 규정은 없다. 이를테면 피해자가 정신적 피해를 호소해 회사 차원에서의 배려를 요구할 때 다른 직원이 가해자인 성범죄 피해는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진단서를 따로 제출해야하고 그 원인이 사내의 다른 직원이라는 것은 회사 기준에서 그다지 의미 있는 정보가 아니다. 이렇게 병가를 내는 것만 가능한데, 이는 피해자 구제가 아닌, 질병에 대한 사내 조치 수준으로 완전히 다른 맥락이다.
 
성범죄와 관련해 조직 내에서 문제 제기를 했을 경우 처벌된 케이스가 반, 사실상 별다른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은 케이스가 반 정도 되었다. 그리고 처벌된 케이스조차도 사건 자체가 이유가 되기보다는, 회사 내부의 정치적인 맥락에서 사건을 명분삼아 처리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X는 회사에서 세력을 구축하지는 않았으나 딱히 정적이 없기 때문에 문제 제기를 한다고 해도 유야무야 넘어갈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그리고 처리가 된다고 해도 내 일이 진짜 이유가 되지 못하고 실제로는 정치적 이유로 처리되는 것도 싫었다.
 
실제로 나와 비슷한 시기에 발생했던 사건의 피해자였던 직원은 사내 고위 간부가 가해자였다. 이 간부는 늦은 밤에 직원의 집 앞에 찾아가 전화한 사례였다. 해당 직원은 다른 직원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고 다른 직원은 곧바로 해당 간부에게 이 말을 전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간부는 바로 피해를 입은 직원을 불렀다는 이야기. 두 사람이 만나서 간부가 입막음을 했는지, 사과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피해자에게 위협적으로 들렸다. 사과하고 좋게 넘어갔을 가능성이 없지 않았고, 심지어 나 역시 사과를 받은 적이 있지만 어쩐지 그렇게 생각이 가지는 않았다. 이 직원은 해당 간부를 반대하는 사람들로부터 문제 제기만 하면 그 후로는 알아서 처리해주겠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결국 피해자가 문제 제기를 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이 조직에 성범죄 척결에 앞장서고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하는 의도는 없었다. 그들이 직장 내 성적 괴롭힘에 피해자 편을 들고 나선 케이스가 이 사례 외에는 없기 때문에 이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로부터 몇 달 후 다른 직원 한 명이 한 달여간 동료 직원으로부터 심각한 언어적 성희롱에 시달리던 케이스에서, T의 워딩은 ‘별로 심각한 피해는 없었다면서요?’였다. 정적을 만들지 않았다면 가해자가 조직에서 살아남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한 번은 워크숍에 참가했던 기자 한 명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었다. 앞선 사례들이 당시 사내에서 화제였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하던 끝에 그는 내게 물었다.
 
“이런 이야기 들으면 불안하지 않아요?”
 
이 질문에 아무렇지 않은 척 상황을 넘길 수 있는 말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럴 수도 있었고 공개 범위를 확장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래야 했지만 괴로움이 내 그릇을 넘치던 당시의 나는 어쩐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도 이미 사내 성폭력의 피해자라 그다지 놀랍지는 않다는 식으로 답했다. 워크숍 당시 발생했던 일이라고도 말했다. 나는 이 이상은 말할 생각이 없었다. 가해자가 누군지를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이 일을 겪으면서 기자가 무섭다는 생각을 두 번 했는데, 그 중 첫 번째다. 그는 당시 워크숍 참석 인원을 한 명 한 명 추려내면서 가해자 X에게 접근해갔다. 사실 그가 그렇게 지목한 사람은 X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는데 엉뚱한 사람이 지목되는 것을 그냥 보아 넘길 수도 없어서 나는 결국 X의 이름을 말하고 말았다. 그는 X가 예전 회식 당시에 했던 행동을 내게 알려주며 그렇게 의외는 아니라는 듯한 태도를 보였지만, T의 사례를 말했을 때는 그 사람은 원래 스킨십이 많다며 막아주는 모습이었다. 이때는 좀 당혹스러웠다.
 
이렇게 접한 이야기들은 내 일이 알려지면 내가 받는 고통이 더욱 가중되리라는 예측을 하게 했다. 공론화에 대한 불안감은 단지 파놉티콘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선 피해자가 남기 어려운 회사 분위기상 내 경력이 끝날 가능성이 있었다. 공론화를 내가 견디지 못하면 나는 여기서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성폭력 피해 사실을 내 잘못이라고 드러내놓고 말할 사람은 없었지만 유리 천장이 꽤 낮아진다는 것은 각오를 해야 한다.
 
나는 계속해서 상처를 입고 있었지만, 만약 이 괴로운 기억 모음이 사람들에게 다 알려지고도 그 후에 별다른 조치 없이 대충 넘어간다면 그 때는 정말 다시 서기 어려울 만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을 것 같았다. 그리고 대충 넘어간 사례에 대해서는 충분히 접했기에 어떤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조용히 내 마음이 풀리기만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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