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이 회사의 계열사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직원 한 명에게 프로젝트의 취지와 일정, 장소와 참가할 인사에 대해 기사를 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지시를 받은 직원은 아는 포털에 모두 들어가 해당 검색어를 입력하며 정보를 수집하다가 난색을 표했다. 참가할 주요 인사 한 명에 대해 검색했더니 좋은 이야기는 하나도 없고 나쁜 이야기만 산처럼 쌓여있다는 거다. 기사를 쓰라는 지시를 받았으니 뭐라도 쓰긴 써야하는데 해당 인사를 공격하는 기사를 쓸 수는 없다며 고민하고 있었다.

 

이 직원은 입사한지 한 주 정도 되었고 사회 초년생이었다. 어뷰징팀은 기사의 복제 요령에 대한 교육을 받았지만 게이트 키퍼의 기능이나 보도 윤리 또는 원칙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았다. 우리는 연예인이 SNS에 무슨 글을 하나 잘못 올리거나 범법 행위의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되었다는 타사 기사를 발견하면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말고 할 것 없이 기사를 긁어와 해당 연예인의 사회적 매장에 기여했다. 아는 것 없이 삽으로 흙을 덮고 땅을 단단히 다져 다시 기어나오지 못하게 묻어버리는 게 우리의 일이었다. 우리는 하루에도 연예인을 몇 명씩 파묻었다.

 

하지만 계열사 프로젝트와 관련된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니 차마 기사를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 직원은 자사나 계열사와 관련된 기사를 올릴 때 견지해야할 태도에 대해 배운 적이 없었고 비판하는 기사를 올렸다며 처벌한 사례도 몰랐으며 위협을 받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계열사 유관 인사에게 피해가 될지 모르는 기사를 쓰면 안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른바 자기 검열이다.

 

되짚어보면 회사 입장에서는 나처럼 하나하나 따지고 드는 직원보다는 깔끔하게 자기 검열을 하는 직원이 편했을 것이다. 이 케이스를 내가 받았다면 나는 그 나쁘다는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기사화했을 것이다. 그게 노이즈 마케팅으로 작용했을지, 아니면 내가 알지도 못하는 높으신 분의 분노에 힘입어 해고되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이전 직장에서 나는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 자사의 한 프로그램이 중고등학생으로 하여금 고가의 옷을 구입하도록 부추긴다는 기사를 기획한 기자가 있었다. 이 기자는 해당 프로그램의 영상을 이용하고 싶어했는데 이에 대해 다른 기자들의 의견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해사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는 해당 프로그램의 스탭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영상을 달라고 말해봤지만 아무래도 부정적으로 나갈 게 뻔하다보니 선뜻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 이 리포트는 결국 프로그램의 스탭을 거치지 않는 다른 루트로 영상을 확보해 메인 뉴스에 나갔다. 나는 그 리포트가 나가는 게 옳았다고 본다. 남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싶다면 스스로에게도 그만한 잣대를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나에게 관대하고 남에게 엄격한 것은 일종의 독선이다.

 

이는 비단 어뷰징 담당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어뷰징을 넘어 언론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지만 언론만의 문제라고도 할 수 없다. 한 회사 신규 프로젝트에 투입될 인사의 기사가 어떻게 나가느냐는 별 것 아니지만 언론인이 자기 검열을 하는 대상이 권력층이 될 수도 있다. 교과서는 인간이 평등하다고 가르쳤지만 사회 초년생들은 이미 비난해도 되는 사람과 비판해서는 안될 사람을 구분하고 있었다. 이는 사회 자체가 개개인이 자기 검열을 하지 않을 수 없게끔 위축되었음을 시사한다.

 

나에게 언론사는 강호같은 곳이다. 은원관계가 켜켜이 쌓여있고 떠나고 싶다고 떠날 수도 없다. 내가 언론사에 적을 두지 않았을 때도 나는 언론사의 눈을 통해 세상을 접했기 때문에 떠나도 떠난 게 아니었다. 그런데 언론사가 자기 검열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말하면 나 역시 세상을 왜곡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위축될대로 위축된 사회에서 언론에게만 투명과 공정을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강호의 정의를 어디서부터 찾아야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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