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꿈을 꾸었습니다.

가해자 X가 회사 근처에서 저를 성희롱했습니다. 꿈 속에서 꽤 오래 참았습니다. 성희롱이 추행의 단계로 넘어가려할 즈음, 제가 주변에 있던 회사 경비원께 말씀을 드렸고 그 분께 감찰이나 감사를 진행할만한 사람을 불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경비원 분이 제 부탁을 받고 회사로 가는 동안에도 가해자 X의 성희롱과 성추행이 지속되었습니다. 제가 감찰해줄 사람을 부른 것을 알고도 말입니다.

몇 분 후, 감찰 담당자가 왔는데 기자였고 저보다는 선임이었으며 가해자 X에게는 후배였습니다. 짐작가는 내부인 이미지가 있습니다만 그는 현실에서 유명한 영화배우의 외모로 나타났습니다. 제가 그에게 피해사실을 말하는 동안 가해자 X는 옆에 있으면서도 입을 다물었는데 제 말이 끝나자 감찰하러 온 기자가 제게 말했습니다.

“왜 경찰에 안 가고 나한테 왔니?”

이것은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을 처리하게 만들어 곤란에 처하게 했냐는 의도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황당해하는 중에 저는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어제 또 꿈을 꾸었습니다.
이번에는 회식자리였습니다. 가해자 X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명이 제가 가해자 X와 사귀고 있다는 말을 공개석상에서 퍼뜨렸습니다. 꿈의 시점이 뜬금없는 어느 시기가 아니라 제가 한창 가해자 X의 성폭력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청한 때였기 때문에, 그에게 이 자리에서의 발언을 빌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했습니다. 사실은 꿈 속에서 너무나 화가 나서 겨우 저 정도 이야기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위에 쓴 글은 제가 잠을 자다가 꾼 꿈을 그대로 적은 것으로, 꿈으로써는 사실이지만 이 내용은 실제 발생한 일이 아닙니다. 저는 가해자 X와 사귄 적이 없습니다. 가해자 X는 제가 퇴사한 이후 만난 적이 없어 그는 제게 직접적인 성폭력을 가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감사 담당자가 유명 영화배우일 리 만무하고, 제가 떠올렸던 이미지의 내부인은 감사 업무를 담당한 적이 없습니다.

또한 저는 성희롱이 시작되고서 꿈속에서처럼 오래 참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대처 방법을 어떤 식으로든 좀 더 빨리 찾았겠지요. 저는 꿈에서는 현실에서보다 눌변이라 깨어난 다음 후회하곤 합니다. 현실이었다면 장담컨대 훨씬 잘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가해자 X도 제가 무언가 반격을 하려는 걸 아는데도 저를 놀려대고 움직이지 않을 만큼 세상 물정 모르는 이가 아닙니다. 꿈 속에서 다소 현실적이었던 부분은 “왜 경찰에 안 가고 나한테 왔니?”라는 자조 섞인 혼잣말뿐입니다.

회사 내에서 성폭력 사건들을 겪고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글을 쓰고 방송을 한지도 2년이 되었습니다. 사건은 그보다 먼저 일어났습니다. 아직까지 그 기억이 남아 제 무의식이 저를 건드린다면 저는 아직 그 사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여기는 편이 타당합니다. 유리 파편에 저도 모르는 사이 찔리는 느낌이 듭니다.

제 이야기는 사건 발생 후 제가 입을 열었을 때, 어쩌면 제가 글을 쓰고 방송을 했던 시점에서 소비되고 언급되고 잊혀졌을 것입니다. 그게 미디어의 생리입니다. 미디어의 생리는 미디어의 특성을 나타낼뿐, 미디어의 흐름이 사실을 대변해주지는 않습니다. 사건이 공개된 그 시점에만 제가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로 인해 제가 고통을 겪은 것은 이제껏 수년이 되었고, 후유증이 언제까지 가게 될지는 저로서도 알 수 없습니다.

저는 여전히 남성이 불편하고, 그들이 가까이 다가오면 무언가 불순한 의도가 있으리라고 예단하며, 그들이 가까이 오지 않기를 원하고, 그것을 위해 외모를 망가뜨린 적도 있습니다. 이는 확실히 편리하고 유효했습니다. 반드시 그 때문이라고 단정지을 근거는 없지만, 저 스스로는 남성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다소 자유롭게 지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을 잊은 게 미디어를 통해 사건을 접한 분들 뿐일까요? 가해자 X를 비롯한 사건 관련자들을 찾아가서 이 이야기를 꺼내도 그 가운데 대부분은 “너 아직도 그 얘기하고 있냐?”라는 타박을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온전히 벗어났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그 회사에서는 여전히 저와 가해자의 이야기가 가십거리로 돌 테니까요. 저와 비슷한 많은 피해자들의 이야기와 함께 말입니다. 조직은 피해자를 과거에 박제하고 현재까지 힘들다고 하면 입을 막아버립니다. 그 곳이 사람보다는 조직과 권력이 사는 곳이라 그렇습니다.

지금 KBS 2노조는 지난 정권의 언론 장악과 그 잔존 세력이 남았다는 이유로 파업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파업하는 쪽은 나름대로 이해받기 위한 명분 싸움을 하고 있지만 파업하는 사람들의 도덕성은 대체 누가 검증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소위 이사진과 사장단이라는 사람들이 내려가고 나서 KBS를 지킬 당신들은, 또 뭐가 그렇게 다른 사람들인가요? 위계 서열을 이용해 부하 직원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것은 당신들 기준에서 보호해야할 문화인가요? 사장단을 물러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 자신들 스스로가 어떤지 돌아보는 것은 뒷전인가요? 그 외에도 당신들의 안위만을 위해 입을 꼭 닫고 지켜보는 부조리가 얼마나 많은가요?

국민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면 지금보다는 좀 더 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신들은 누군가에게는 약자겠지만, 당신들이 강자로서 대할 수 있는 약자가 더 많습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다는 슬로건은 내세우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한 명의 국민이기도 했지만 KBS의 보호를 받지 못했고 사내 그 어떤 조직의 도움도 받지 못했으며, 1차 가해자 그룹에는 사장단이나 이사진은 없었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이 상처 입는 것 따위는 공감할 줄도 모르는 영악한 노조원들과 간부가 있었거든요.

국민의 품에, 제 품에 KBS가 있다는 것은 제게 끔찍한 일입니다. 언제 터져서 저를 상처입힐지 모르는 폭탄을 제 품에 안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저는 KBS 2노조 파업의 성공도 실패도 바라지 않습니다. 저는 오래도록 당신들이 공정성의 가치를 깨닫기를 기대했지만 더 이상은 기대하지 않습니다. 이제 조용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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